십 몇 년 전으로 기억한다.
아주 친한 분이 그 분의 조카가 홍대 근처에 카페를 개업했는데, 매상이라도 올려줘야 하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아가씨가 우리 자리로 와서 점을 보겠냐는 질문을 한다.
알고 보니, 그 카페는 <사주 카페>였고, 그 아가씨는 카페에 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점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카페 사장과의 친분 때문에 간 것이었고, 어떻게든 매상을 올려주려고 간 것이니
같이 간 일행은 재미로 점을 보겠다고 했고,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사주나 점을 믿지 않았고, 따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집사람과 결혼할 때도 사주니 궁합을 안 봤다.
막상 결혼식 날짜까지 잡은 사람이 사주나 궁합이 나빠서 헤어졌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가끔 들었기 때문이다.
같이 간 두 사람이 점을 보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니, 두 사람은 점쟁이 아가씨한테 흠뻑 빠졌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중 대략 맞는 말도 있는 것 같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데, 재미 반 흥미 반으로 맞장구도 쳐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에 대한 점이 끝나니, 이제는 나한테 점을 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안 보겠다고 했는데, 같이 간 일행이 (매상이라도 올려줘야 하니) 꼭 보라고 해서 할 수 없이 OK.
당시 나는 십년 동안 하던 출판사에서 전자책 사업으로 업종 전환을 했었는데,
(지금부터 최소 십년 전이니) 너무 빨리 사업을 시작한 것이 패착이었다고나 할까?
기대했던 투자가 들어오지 않으니 갑자기 빚이 생겼고,
투자를 받거나 회사를 팔려고 여기저지 쫓아다니던 때였다.
십년 동안 거래해오던 많은 거래처에서 상환 계획을 이야기해달라고 계속 전화가 왔었고,
투자를 받거나 회사를 팔지 못하면 빚을 갚을 수 없었기에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점쟁이 아가씨가 나에 대한 점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입장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빚을 갚을 수 있을까?>였기에, 그 질문을 했다.
그 점쟁이 아가씨 왈, <빚이 얼마나 됩니까? 1조쯤 되나요?> 라고 이야기한다.
순간 당황했다.
<아니오, 이것저것 따지면 10억 정도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고 했더니,
<1조도 아닌데,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내 사주는 빚을 다 갚을 사주이다>라고 한다.
20대 후반의 점쟁이 아가씨의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커피 한 잔 값으로, 장난 삼아 보는 초보(?) 점쟁이 아가씨의 말.
그런데 너무 단호하게 <빚을 다 갚을 사주>라고 자신하니, 믿어야 하나? 아니 믿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회사에 투자를 받거나 회사를 매각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 간단한 문제만 풀면 해결되는데,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더 노력해라는 의미같기도 했다.
당시 3개월에 한번씩 추첨하되, 당첨금이 20억인 복권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복권에 당첨되면 빚도 다 갚고, (세금 빼고도) 몇 억이 남으니, 그 복권에 당첨된다는 말인가?
<내 사주가 빚을 다 갚을 사주>라고 하니 두려움이 없어졌다.
오랜 거래처에서 언제 빚을 갚을 것이냐는 전화를 받기가 싫어서 가끔 피하기도 했는데, 피할 필요가 없어졌다.
까짓, 회사를 팔면 해결될 일.
까짓, 20억 복권에 당첨되면 해결될 일.
걸려오는 전화를 가끔 피하던 사람이 자신감 있게 전화를 받고, 현재 어떤 업체와 접촉중이고,
현재 어떤 말까지 오가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주니 얼마 전까지 나를 귀찮게 하던 분들이 오히려 응원해준다.
내가 마음가짐을 바꾸니 세상이 바뀌었다.
내가 자신감을 가지니 모든 세상이 달라보였다.
마음 속에 항상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그 구름을 걷어내니 파란 하늘이 있었다고나 할까.
자, 물어 보겠다.
<빚이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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