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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몰 입점 관련

남의 다리 긁기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컴퓨터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다가 당시 아주 유명한 아래아한글을 만드는 한글과컴퓨터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한컴은 아래아한글 사용자를 위한, 아래아한글로 만드는, 아래아한글에 대한 컴퓨터 잡지를 만들고 싶어 했고,
어찌어찌해서 내가 전반적인 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당시 아래아한글로 많은 사람들이 리포트나 논문, 단행본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래아한글로 잡지를 만드는 곳이 하나도 없었기에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큰 모험이었다.

당시 잡지 시장은 식자로 제작하여 수작업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매킨토시가 DTP시장에 막 뛰어들어서 슬슬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래아한글은 그야말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상황.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시작했는데,
실제 그 일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으니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고민이 많았다.

기자와 편집디자인 분야의 일부 경력사원을 채용했지만,
하나하나 가르쳐야 할 신입사원이 필요하게 되어 여러 곳에 채용 공고를 했다.

업무의 특성상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고, 기사를 작성할 글쓰기 능력도 필요해서
몇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아래아한글로 작성해라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다양한 양식이 존재하지만,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아래아한글로 작성하는 능력도 봐야 했고,
이력서야 자신이 살아온 길을 나열하는 것이지만,
자기 소개서는 가정 환경이나 성격을 포함하여 글쓰기 능력을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기억 상 굉장히 많은 이력서가 들어왔던 것 같다.
1차 서류 전형에서 어느 정도를 고른 다음 2차 면접을 볼 사람을 정하는데,
한두명이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아래아한글이 아닌 경쟁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서 보내왔는데,
고민하다가 면접이라도 보자고 했다.

면접에서 다른 워드프로세서로 자기 소개서를 작성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지?

아래아한글 이용자를 위한, 아래아한글로 만드는 잡지를 만드려는 회사에 지원하면서
그에 맞는 지원서를 쓰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한번 만들어넣고 회사 이름도 보지 않고 여기저기 넣는 것보다는
입사하려는 회사의 성격에 따라 일부 수정해서 넣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어느 조직이나 신입 사원을 채용하려고 할 때는 뭔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것이고,
간지러운 부분이 있다면 긁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하는데,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을 채우려고 하거나
간지러운 부분이 아닌, <남의 다리를 긁는> 식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특정 제품을 찾는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그에 맞는 제안서를 보낸다는 것은, 그 업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의 다리를 긁는> 제안서를 보내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판매(?)하려는 제안서이고,
일반적인 제품 제안서는 그 사람이 취급하는 제품을 판매하려는 것이다.

결국 상대방 입장에서 어떤 곳이 가려울까, 부족할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다음 그에 맞게 제안서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