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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몰 입점 관련

제발 빨리 돈을 찾아가세요

3년 정도 된 일이다.

데일리업은 일반 제품을 복지몰/폐쇄몰에 제품을 공급하는 일도 하지만,
디지털 컨텐츠를 여러 기업체에 판매하는 일도 하는데, 이번 건도 디지털 컨텐츠 관련된 이야기이다.

우연히 아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 전자책 업체의 아동용 플래시 파일을 구입하고 싶은 업체가 있으니 만나보라는 것이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전자책의 소스를 사서 자기 회사의 로고를 넣고싶다는 것이다.
보통은 제작회사 로고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몇 년 단위의 사용권 계약을 하게 되는데, 
프로그램의 소스까지 달라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아주 의외였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돈이 없으니, 무지 싸게 해달라고 한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많은 금액을 받고 싶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적은 금액을 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데,
그 격차를 최대한 줄여서 성사시키는 것이 내 임무였다.

제작사 대표를 최대한 설득하여 특정 금액에 프로그램 소스를 넘겨주기로 계약하고,
계약과 동시에 50%, 검수기간 15일 뒤에 50%를 받기로 했다.

당연히, 계약하던 날 50%는 받았는데, 보름 뒤 잔금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직원이 그만 둬서 검수를 못 했다, 새로 뽑았는데 아직 업무 파악이 안 되었다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두 달이 지났고, 뜬금없이 소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계약을 파기하자는 식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제품이더라도 정해진 검수 기간이 지나 품질 핑계를 대는 것도 황당하지만,
프로그램 소스를 받은 상황에서 두 달 지나 반품이나 환불 이야기하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차라리 거래처가 돈을 안 줘서 힘들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조금 기다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소스를 받은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니 개발사에서도 무지 황당해했고, 법적으로 처리해달라고 한다.

법무사 사무실에 문의하니, 100%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한다.
정식 계약서가 있고, 계약한 날 세금계산서 발행했고, 50% 돈도 입금받았으니, 모든 상황이 유리했다.

다시 법무사를 통해 두 번의 내용증명을 보냈는데도, 상대는 묵묵부답.
이제는 정식 소송을 걸었는데, 상대방에서 출석을 두 번 하지 않아 싱겁게 승소했다.
실제 상대방에서 출석해서 항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출석하지 않은(못한) 것이다.

재판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승소는 승소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상대방이 재산을 빼돌려놨다면, 승소해도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한 대목이다.

실제 상대방은 주식회사였고, 사무실 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기에 전세보증금을 압류할까도 생각했지만, 
집주인을 상대로 또 다른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아예 상대방을 쪽팔리게 만들기 위해 사무실의 모든 컴퓨터나 집기에 빨간 딱지를 붙일까도 생각했지만,
집달관이 한 번 출동할 때마다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내가 부담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중고 가구를 인수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니 그것도 마땅찮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장 깔끔한 통장 압류였다.
각 은행의 본점에 법원에서 발급받은 서류를 보내 일정한 금액씩을 압류해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통장 압류도 쉬운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을 돈이 1000만원이라고 할 때, 모든 은행에 1000만원씩 압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000만원 한도 내에서 100만원씩 10개 은행을 압류하거나 3개 은행을 333만원씩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그 회사의 주 거래은행이 어디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그 회사 홈페이지에는 10개 은행의 계좌번호가 올려져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처음 계약하면서 나한테 입금해준 은행이 주거래은행일 가능성이 높아 그 은행을 선정했고,
정보망을 총동원했더니, 그 회사가 어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은행을 압류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3개의 은행 본점에 (법원에서 발급된) 압류 명령을 내용증명으로 보냈고,
며칠 뒤 각 지점으로 통장압류 명령이 하달된 것을 보고,
3개의 은행에 가서, 남아 있는 잔액만큼씩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은행에 300만원을 압류를 걸었는데, 현재 잔액이 100만원 있다고 하면, 내가 그 은행에서 100만원을 찾게 되고,
남은 200만원은 채워질 때가지 그 압류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실제 그 날, 3곳의 은행에서 찾은 금액이 약 300만원 정도일 것이다.

그 날 저녁, 상대방한테서 전화가 와서, 압류를 풀어주면 돈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여기에서 확실히 알아둬야 할 사항은, 한 번 압류를 풀어주면, 돈을 안 보냈다고 다시 압류할 수 없고,
 다시 재판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압류를 풀어주는 사람은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급할 것 없다.
그 통장에 돈이 다 입금되면 (내가 그 돈을 찾게 되면) 압류는 자동적으로 풀어지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여유를 부리니, 오히려 급해진 건 상대방이었다.

3개 은행 중 하나는 주거래 은행이고, 또 하나는 대출을 받은 은행이다.
대출을 해준 은행 담당자가 통장 압류를 빨리 풀지 못하면, 대출 연장이 안 된다고 연락한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온다.
3곳 은행에 잔액 다 채워놨으니 제발 빨리 돈을 찾아가라고 한다.

그 날 무지 바쁜 날이어서 은행에 일일이 다닐 시간이 없어서 내일쯤 시간을 내볼까 한다고 하니
거듭 전화한다.

"제발 빨리 돈을 찾아가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