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지몰 입점 관련

"아이~ 느그들이 내 도시락 싸다 줬잖아~"

어제 개인적으로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국민학교 4,5,6학년 계속 같은 반을 했었고, 거의 매일 붙어살던 친구,
대학교를 거쳐 결혼했어도 매년 명절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항상 만나던 친구,
여러 친구들이 있지만, 제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밤 12시가 넘어서 부고 문자를 받았는데, 문자를 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기가 꺼져있고,
설마 부고 문자를 장난으로 넣는 몰상식한 사람은 없을텐데, 상황파악이 안 되니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내내 뒤척이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해보니 사실이라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친구에게 전화해봐도 같은 상황이고...

자다가 갑자기 뇌출혈이 일어나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사흘만에 떠났다고 한다.
위독하다, 병문안 와라 이런 식의 연락도 취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기차로 4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 고향이지만 안 갈 수 없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정리하고 출발해도 저녁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나이에 보통 부모님이 먼저 가시니 부모님 상가에 모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상주여야 할 사람이 누워 있으니 답답하고 황망할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친구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많이 와주었다는 것이다.

이쪽 테이블, 저쪽 테이블,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먼저 떠난 친구를 떠올리는데,
내 옆에 앉은 친구의 말이 가장 인상 깊다.

그 친구는 가정 형편이 굉장히 어려워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객지로 나가 어린 나이에 돈 벌려고 취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그 친구 입장에서는 오직 국민학교 친구밖에 없는 것이기에,
국민학교 친구들 모임에는 자주 나오고 잘 어울리려고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보다 보니,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 하지만, 
남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 여러 공장에서 힘든 생활을 했을 것인데,
명함을 받아보니, 지금은 그럴싸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 친구와 떠나간 친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데,
그 친구집이 워낙 가난해서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 없었던 시절,
떠나간 친구와 몇몇이 가끔 자기 도시락을 더 싸와서 같이 나눠먹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이 나고,평생 고마운 마음이 들어 멀리 객지에서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

"아이~ 느그들이 내 도시락 싸다 줬잖아~"

그 친구의 기억 속에는 40년 전, 가장 배고팠던 시절에 
자기를 위해 도시락을 나눠줬던 몇 몇 친구 이름을 계속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과
자그마한 선행(또는 악행)이 평생의 관계를 좌우한다고나 할까.